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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연습(수필)

이별연습

2015220.

설 다음날 가족들은 어느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오래 미루어두었던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나와 집사람, 딸과 아들, 그리고 어머니, 요양병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집사람과 조금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분 앞에 갈 수가 있었다. 그분은 나의 외숙모님 되시는 분이다. 올해로 연세가 96세 치매가 있으시고 몸도 많이 야위어서 언뜻 다른 사람이 아닌 가~할 정도로 많이 연로해진 모습이다. 어머니의 연세는 외숙모님과 띠 동갑으로 84세 되신다. 외숙모님은 몇 년 전부터 거동이 힘 드셔서 요양원으로 모셨는데 노환이라는 거 빼고는 특별하게 병이 있으신 게 아니어서인지 그만저만하게 상태를 유지하고 계신 것 같다. 어머니도 치매에 말씀도 못하시고 외숙모님 또한 같은 치매이시다보니 뚜렷한 의식의 의사전달이 되지를 않는다. 이번의 방문목적은 어머니의 장기요양등급이 나와서 시설 쪽으로 모실 생각을 하고 보니 이번기회가 아니면 살아생전에 두 분이서 만날 수가 있을까 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역시나 선뜻 알아보시지를 못하고 옆에서 부연설명을 한 뒤에야 "어디가 아파스까?" "어디가 아파스까?"를 연발하신다. 아프신 이후로 얼굴에 살이 많이 빠지신 걸 말씀 하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외숙모님을 보시지는 않고 먼 곳이나 다른 쪽으로 시선을 더듬기만 할뿐 애틋하게 그 옛날의 다정했던 시누 올케간의 정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만 흐를 뿐이다. 처가 집에 가야하는 일정 때문에 일어나야 해서 다음에 올 것을 약속하고 일어나시자고 손이나 한번 잡아드리라 하니 마지못해 한번 슬쩍 잡아 보기만하고 시선은 딴 곳으로 둔 채 의미 없는 손 짖을 허공에다가 한다. 이제 이분들이 언제 이승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까운 이별은 그렇게 과거의 한 점으로 남아버리고 우리는 돌아서야 했다.

 

2015528.

동생이 왔다. 이제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입소하기로 약속된 시간은 열시. 모시기로 한 요양원은 거리가 가까우니 아직은 시간의 여유가 있다. 하지만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는 가족들의 모습과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딘지 분위기가 겉 돌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는 무엇 때문에 가족들이 모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듯이 약간은 긴장되고 약간은 멍한 표정이다. 요양원으로 가는 길 차안에서는 모두들 말을 잃어 버렸는지 조용하다. 지금 가는 길은 어머니가 평소에 자주 다니시던 길이다. 아들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손녀 손자 잘 되라고 매달마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부처님께 빌러 다니시던 그 길, 절에 가시던 길이다. 이 길이 이제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모르는 타인들과 살아가야 하는 요양원으로 가고 있는 길이라는 걸 어머니는 알기나 하는 걸까? 승학산의 초입에 위치한 요양원은 노인건강센터라고 간판을 달고 있다. 산중에 있어서 공기도 좋고 시설도 좋은 곳이라서 망설임도 없이 선뜻 결심한 시설이다. 계약을 위해서 집사람과 사무실로 들어갔다. 각 부서의 팀장들이 차례대로 불려 와서 이런저런 상황설명을 하고 있지만 딱히 귀에 담아지지를 않는다. 정녕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이렇게 안하면 안 되는지 온갖 생각들이 가지에 가지를 치고 있다. 날인을 해야 하는 서류는 왜 그렇게도 많은지 생각을 더욱 많아지게 한다. 서류 작업이 끝나자 생활실로 가보자고 한다. 벌써 점심시간이 된 모양이다. 여기저기 휠체어에서 테이블에서 노인들은 각자의 식사들에 열중하고 계신다. 어머니도 생활팀장의 시중으로 국수를 드시고 계신다. 이제 우리는 가야 한다고 이제는 여기서 사셔야 된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린다. 말을 못하는 어머니는 그저 시선만 줄뿐 표정이 없다. 이것 또한 이별연습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있을까? 돌아 나오는 길에 혹시라도 따라 나서겠다고 투정이라도 부리시면 어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은 나의 노파심일 뿐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차라리 따라 가겠노라고 그러시면 힘은 들어도 마음이라도 덜 아프겠지만 어머니는 자식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자식들이 힘들어 할 것을 염려라도 하는 듯이, 아무런 반응이 없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는 정적만 감돌 뿐 모두들 말이 없다. 집으로 돌아와서 계시던 방문을 열어 본다. 거기에는 어머니가 주무실 때 베던 베게만이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1631.

멀리 용인에 사시는 외사촌 누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님의 어머니인 외숙모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신다. 가까이에 사는 내가 멀리 계시는 누님으로부터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는 게 너무나 어색하고 죄송할 뿐이다. 누님 역시도 칠순을 넘기신 노인이시다. 건강이

허락하지를 않아서 못 오실 것 같다면서 외사촌형님 댁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물어본다. 혹시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어머니모시고 뵙고 온지 1년 정도가 지난 것 같은데 무심한 듯 의미 없는 손짓을 마지막으로 돌아서 나왔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무심하게도 그렇게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는가 싶다. 안타까웠던 손짓과 시선을 거두시고 수십 년 전에 돌아가신 젊은 외삼촌을 만나러 가신 것일까. 장례식장에 가서 외사촌 누님들과 동생들을 수십 년 만에야 만난다. 반가움은 세월의 간극과 멀리 떨어져 살아온 낯 설음 때문에 어색함으로 다가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발인 날 아침 발인 시간이 느지막히 잡힌 관계로

시간이 많이 남으니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오자고 나를 앞세운다. 외사촌들 역시 그들의 고모인 어머니를 수십 년 동안 뵙지를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뵙고 가자는 생각인 것 이다. 도착한 요양원에서 야윌대로 야윈 얼굴의 그들의 고모를 마주 하고서 눈시울을 붉혀 보지만 그들의 고모는 친정 조카들을 알아보는지 못 알아보는지 평소의 의사 표시인 팔을 들어 올려 보이는 것으로서 대신 한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친정 조카들과 얼마나 많은 반가움의 말을 쏟아 낼 것일까 싶지만 정작 뇌졸중으로 인한 치매는 그 애틋한 상봉까지도 빼앗아 가버렸다. 외사촌 누님의 알아보겠느냐는 물음에 팔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으로 접어든 누님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외사촌들의 얼굴에서 아련했던 옛날의 어머니의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기억해 보는 것인지 얼굴에 팔자 주름을 그리시며 웃어 보인다. 애틋함과 안타까운 숨소리만이 고즈녘한 산중의 요양원에 나즈막히 들려올 뿐이다. 이 세상에 부모로부터 피붙이라는 인연으로 태어나서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살다가 각자의 삶으로 멀리 떨어져서 애틋한 마음만으로 살아가다가 이별이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치매라는 몹쓸 병에 잠식되어 버려 조카들과의 애틋한 상봉도 어머니에게는 뜻 모를 어색함으로 다가올 뿐인 것이다. 장례식은 끝이 났다. 그리고 외사촌들도 각자의 일상 속으로 그들이 왔었던 그 길로 돌아갔다. 지금도 우리는 어머니를 뵈러 주말마다 간다.

며칠 전 고향친구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식장에서 이런 저런 소식들이 무차별 적으로 들려온다. 그 소식들과 함께 가슴 아픈 소식들도 들려온다. 자식이 간암 말기라는 친구의 이야기, 본인도 간암인데..... 와이프가 암인데 손도 못쓴다는 어느 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얼마 전 황망하게도 급작스럽게 남편을 보낸 친구의 이야기 까지.....

어떤 이들은 이별을 했고 어떤 이들은 이별 연습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어머니를 뵈러갈 것이다. 이별할 때 많이 아파하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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