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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으로 살기(수필)

차재석 2016. 6. 29. 18:08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 하는 일없이 보내고 있는 지도 십년도 더 넘은 것 같다.

백수의 일정상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소일거리를 찾은 게 책을 보는 일인데 배움이 짧은 관계로 어려운 책은 보는 것 자체부터 힘도 들고 펴서 보는 순간부터 수면효과를 가져와서 눈이 스르륵 내려와 감기는 때문으로 소설책과 수필종류를 즐겨 읽는데 나이 때문인지 기억 용량의 한계 때문인지 이전 페이지의 읽었던 내용도 되새김이 안 되는 한계 때문에 읽기도 쉽고 이해도 하기 쉬운 쪽으로 주로 섭렵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고 이해하기 쉽고 잘 읽히는 것은 수필인데 내 주위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의 기록들을 나의 이야기처럼 기록해 놓은 것을 영상의 기록처럼 볼 수 있어서 더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장영희 교수가 쓴 수필에서 본 내용이 유독 기억에 남는데 나 또한 그 분처럼 어릴 적에 앓았던 소아마비로 지체 장애인이다 보니 그 수필 또한 더욱 더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장영희 교수는 영문학 박사이자 수필가로 1952년도 태어나서 그 무렵에 유행병처럼 번져 나갔던 소아마비라는 병에 걸려서 양쪽 다리와 오른손에 마비가 와서 목발이라는 도구에 의지해야만 보행할 수 있는 장애인으로 살아 가야했다. 나는 그나마도 왼쪽 다리로만 마비가 와서 목발 없이도 보행이 가능했었지만 장영희 교수님은 자신의 몸만큼이나 무겁고 힘든 목발(그 시절의 목발은 나무로 만든 것이라서 많이 무거웠다)을 짚고 다녔으니 그 힘든 사연이야 무슨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 고등학교는 시험을 쳐서 들어가야 했는데 그렇지만 체력장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그 점수를 포기 하면 나머지 과목에서는 월등해야만 입학이 가능했는데 간신히 중 고등학교를 다닐 수가 있었다 한다. 그런데 대학이라는 거대한 산은 그 당시의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편견 때문에 장영희 교수에게 크나큰 시련과 좌절을 안겨준다. 1960~1970년대 한국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장애인에게는 대학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자체를 허락해 주지 않으려 했었는데 당시에 서강대 영문학과 과장이었던 미국 출신의 브루닉 신부는 장영희 교수의 아버지였던 장왕록 교수(서울대 영문학)의 대학 입학시험을 보게 해 달라는 사정의 말을 듣고는 너무나 의아 하다는 듯이 한 말이 있다.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는가,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는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을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이 말을 들은 장왕록 교수는 훗날에 말하기를 마치 내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물어본 바보가 되었지만 그렇게 행복한 바보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이후로도 장영희 교수는 박사과정 응시 면접에서도 우린 학부생도 장애인은 안 받는다는 냉담한 반응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 시절의 나는 공부에는 소질도 별로 없다 보니 대학이라는 곳이 갈 생각조차도 못 해봤고 나의 앞에 닥친 현실 때문에 사회로 진출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가장 노릇을 하느라고 바빴지만 그 당시의 장애인에게는 아무리 학업 성적이 우수 하더라도 대학 본 고사에는 응시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장애인을 둔 부모님들은 이 대학 저 대학을 찾아다니며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라도 달라고 사정하기에 바빴다고 한다. 지금이야 장애인들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이 장애인 전형이라는 것으로 문이 활짝 열려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장영희 교수가 쓴 수필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신체장애에 악이나 공포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문학도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화에 나오는 악당들은 대부분 신체적으로 모종의 결손이 있거나 정상이 아닌 모습을 하고 있다.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하는 마녀는 다리를 절고 럼펠스틸스킨은 난쟁이이고, (보물섬)롱 존 실버는 나무 다리에 애꾸눈, (피터팬) 의 악한 캡틴 훅은 외팔에 갈고리를 끼고 있다. 신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사람이 자동적으로 악한 성품이나 도덕적 결핍과 연결되는 예는 허다하다장영희 교수는 저술 하고 있다. 이렇게 문학에서도 장애에 대한 편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지금이야 우리 말 순화운동이라고 해서 많이 개정도 되고 했지만 장영희 교수나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960-1970년대에는 왜 그렇게도 글로도 표현 할 수도 없는 단어들로 이루어진 장애인과 관련된 욕을 먹고 살아야 했었는지 장애인으로 산다는 그 자체가 고통이요 고역이었다.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 책의 이름이기도 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김종삼시인이 쓴 어부라는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 생략 )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이만큼까지 그 험난한 삶을 살아온 자체도 기적이니 앞으로도 살아갈 힘은 그 기적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나도 어느 듯 많은 세월을 살았는가 본다. 어디를 가나 아버님 소리를 듣는 걸 보니 말이다. 돌 무렵에 고열에 시달리다 소아마비에 걸렸고 그렇게 50여년을 장애인으로 힘들게 살아 왔는데 지금은 남은 한쪽 다리 까지도 난치성 질환이라고 분류하는 다발성근육 염이라는 병이 나에게 찾아와서 이제는 지팡이가 없이는 자립보행마저도 힘이 겨운 판국이 되었다. 난치성이라는 단어처럼 치료하기가 힘든 병이라 하니 정말 눈앞이 캄캄해 진다. 이제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봄은 돌아오고야 말았다. 불현 듯이 내가 해야만 할 일들이 생겼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처럼, 그렇다, 해야만 하는 일은 우리 집 옥상에 작은 농사를 지어야 하는 일이다. 나의 작은 노력과 조금의 힘을 보탬으로 인해서 우리 가족들의 입이 즐거워지는 일인 것이다.

비록 나는 추수의 계절인 가을로 접어드는 나이가 되었지만 다시 돌아오는 봄처럼 나의 삶에도 우리 장애우 들의 삶에도 살아온 기적처럼 살아갈 기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