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과 우울증]
늘어나는 사무적인 업무, 비만, 고령화 사회 등의 여러 원인으로 당뇨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200만명의 사람들이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지금대로의 속도라면 2025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333만명의 사람들이 당뇨병을 앓게 될 것이다. 당뇨병은 당의 비정상적인 대사과정으로 인 나타나는 대사성 질환이다. 잘 조절하고 관리하면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혈관성 질환, 만성신부전, 심장질환, 신경계질환, 시력의 장해 등의 다양한 합병증을 동반할 가능성이 많아진다. 뿐만 아니라 인지기능의 손상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가 동반되기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내과질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주요우울증의 발병율은 약 2.8%인데 비해 한개 이상의 만성적인 내과질환이 존재하는 경우 4.0%까지 증가한다고 한다. 이처럼 우울증은 정상인에 비해 당뇨병 환자에서 2배정도 더 흔하게 나타난다. 또 우울증 환자의 경우 2형 당뇨병의 발생위험이 37% 까지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당뇨병과 우울증이 상호간에 어떻게 영향을 줄까?
당뇨병은 엄격한 식사관리와 약물 등으로 적당한 혈당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울증이 있는 경우 여러 가지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규칙적인 식사나 운동을 하지 않고 담배나 술에 기댈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기 관리가 되지 않음으로 인해 혈관질환, 당뇨성 족부질환, 당뇨성 망막증 등과 같은 다양한 합병증들이 더 조기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울증은 통증이나 저림과 같은 증상을 더 심하게 자각하도록 만든다. 혈당이 높은 것만으로 주의집중력 장해, 학습능력, 기억력과 같은 인지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우울증은 이러한 인지기능손상을 더 심하게 자각하게 만든다.
우울증은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호르몬들이 인슐린 반응을 떨어뜨려 당뇨의 조절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이 우울증은 당뇨병 관리 및 치료에 악영향을 주어 신체적 합병증을 더 잘 생기게 한다. 이러한 신체적 합병증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더 많은 의료비용을 소모하게 만들어 결국 우울증상이 더 심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우울증을 당뇨병의 합병증 위험인자 중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당뇨병과 우울증이 공존할 때 진단 시 고려해야 되는 것
우울증상은 크게 세가지 증상군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슬픔, 외로움, 화와 같은 정서적 증상들(emotional symptoms), 두 번째, 죄책감, 희망이 없음과 같은 심리적 증상들(psychological symptoms), 세 번째, 불면, 식욕감소, 성욕감소, 정신운동성 지체와 같은 신체적 증상들(physical symptoms)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으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우울한 기분과 흥미의 상실이다. 이중 체중감소, 피곤 등과 같은 신체적 증상들은 당뇨병만 존재해도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당뇨병 환자가 신체적 증상만 보일 경우 우울증과 무관하게 당뇨병의 경과 중에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정서적 증상, 심리적 증상들이 고르게 보일 때 우울증을 의심해야 하며, 당뇨병 조절이 잘 될 때 다시 평가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당뇨병과 우울증이 공존할 때 치료 시 고려해야 되는 것
앞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당뇨병과 같은 만성적인 내과질환 자체가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어 우울증이 더 잘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뇨와 우울증 간의 상호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치료에 고려한다면 당뇨병도 더 잘 조절될 것이며 삶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에서 이처럼 우울증이 빈번하게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들 환자의 약 2/3정도만이 우울증으로 진단받는다. 우울증과 당뇨병이 같이 존재할 경우 우울증상의 증상이 더 심각하고 만성화되는 경향이 있으며 약 80% 이상이 5년 이내 재발을 경험한다고 한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우울증상으로 정신과를 스스로 방문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들 대부분이 가정의학과나 내과 등에서 당뇨에 대한 치료를 받는 중 우울증상이 상당히 심각해지면 정신과로 의뢰가 된다. 경우에 따라 일차 진료의사가 우울증상에 대해서 바로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울증이 있어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거나 충분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진단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당뇨병과 우울증이 공존할 때 적절한 치료방법과 약물의 선택
우울증상이 있을때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제일 좋다. ‘우울한 기분’이라는 증상에 대해 ‘항우울제’ 와 같은 약만 주면 된다고 생각은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충분한 치료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제약이 있지만 환자가 힘들어하는 이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이해를 바탕으로 약물치료가 동반이 되는 것이 제일 좋은 치료일 것이다. 즉 정신치료적인 요소와 약물치료가 같이 시행되어야 한다.
약물치료에서 항우울제, 항불안제의 선택도 상당히 중요하다. 항우울제의 특성을 고려하여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절한 약물을 선택되어야한다. 일반적으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차단제(Serotonin Norepinephrine Reuptake Inhibitor, SNRI), 부프로피온(Bupropion)과 같은 약물들이 부작용이 적어 우울증과 당뇨병이 있는 환자들의 치료에 선호된다.
단가아민 산화효소 저해제(Monoamine oxidase inhibitor), 삼환계 항우울제(Tricycli Antidepressant)와 같은 약물들은 체중증가, 심장전도에 대한 영향, 기립성 저혈압 등으로 당뇨병이 있는 환자에게 피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반면 프로작(fluoxetine)이나 부프로피온(bupropion)과 같은 약물들은 공복 혈당수준을 낮추고, 당조절에 도움을 주며, 단기간 체중감소 효과가 있어 당뇨병에도 도움을 준다. 설트랄린(sertraline)과 부프로피온(bupropion)으로 급성기 치료후에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우울증 재발을 막고 식이조절을 더 잘하였으며 일 년 이상 HbA1c 수준이 나아졌다고 한다.
우울증의 사회경제적인 비용과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
당뇨병과 우울증이 같이 있는 경우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결국 더 많은 건강관리비용이 소모가 된다. 우울증의 호전은 일반적인 내과치료의 이용을 줄어들게 만들며 업무생산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정신과적 치료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치료는 완전히 미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며 한번 정신과치료를 받으면 정신과 환자로 낙인이 찍힌다고 두려워한다. 심지어 당뇨병을 진료하는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도 예외라 할 수 없으며 정신과적 문제에 대해서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신체와 정신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한 사람의 신체와 정신이 별개일수가 있는가? 우울증에 대한 적절한 인식과 치료가 한사람의 정신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에도 영향을 주며 나아가 질병에 대한 사회경제적인 비용까지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계명의대 정신과학 교실 정성원 |